1. 서론
<내 여자의 열매>(1997) → <<채식주의자>>(2007) 연작: '여자의 식물 되기' 모티프
<<채식주의자>>(2007) 연작: <채식주의자>(2004) → <몽고반점>(2004) → <나무 불꽃>(2005)
에코페미니즘적 관점에서 해석 가능,
"그녀의 소설에는 '해석되고 오염된 불수하고도 불투명한 공간으로서의 여성의 몸'이 잘 드러나 있다."
"여성 주체의 몸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질적인 담론들이 어떻게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여성 주체를 구성하는지"
"이 글에서는 이들 작품을 중심으로 여성 주체의 몸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질적인 담론들이 어떻게 첨예하게 대립하면ㅁ서 여성 주체를 구성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구조적 폭력과 주체화의 역설
<내 여자의 열매>를 먼저 살펴보자.
그녀는 왜 식물이 되는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
("빈촌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던 어머니와는 달리 그녀는 "육개월쯤 한 나라에 머물다가 다른 나라로 떠나고, 그곳에서 다시 몇 달을 머무르다가 또다른 나라로 떠"나는 자유로운 삶을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의 결혼을 선택했고, 그 결과 도시 아파트에서 답답한 삶을 살아야했다.")
내면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끝내 밝혀내지 못한 피멍" ← 병원에서도 계속 이상 없다고 함
아내의 정체성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가시성과 내적으로 보이지 않는 비가시성, 두 세계로 구성된다.
피멍은 보이지 않는 내적 고통이 물리적으로 가시화된 것이다.
소설에서는 이 피멍에 대한 설명이 없이 끝난다.
지젝은 폭력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
1) 주관적 폭력: "범죄, 테러행위, 사회 폭동, 국제 분쟁과 같이 명확히 식별 가능한 행위자가 저지르는,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폭력"
2) 상징적 폭력: 언어를 통해 구현, "대상에 규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자체"
3) 구조적 폭력: "사회 구조가 발생시키는 폭력"
주관적 폭력 ↔ 객관적 폭력 (상징적 폭력 + 구조적 폭력)
내적으로 보이지 않는 비가시성의 고통의 원인은 객관적 폭력 중 구조적 폭력으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파국적 결과"
"구조적 폭력은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 외양을 갖춘 주관적 폭력을 통해 더욱 더 깊이 은폐되기 때문이다."
아내는 구조적 폭력(가부장적 세게의 구조)와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의 끝으로 떠나버리는 대신 아내는 그 얼마 안 되느 자금을 이 아파트의 전세금과 결혼비용에 털어 부었다.
"아무래도 헤어질 수가 없어서"라는 짤막한 한마디로 아내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다.
아내는 결혼을 선택함으로써 가부장적 담론에 복종하게 된다.
"아무래도 헤어질 수가 없어서" > "거부와 복종의 이중적 의미가 병존한다."
"이는 결혼에 대한 자기 복종이 전적인 복종만은 아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권력에 대한 복종과 함께 주체가 된다.
"즉 인간의 주체성은 권력과 법의 호명에 무의식적으로 응대하면서 형성된다."
그러나 "주체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호명에 복종하면서 형성되지만, 주체에게는 복종 속에 완전하게 흡수되지 않은 잔여물이 있다."
"주체는 기존의 법과 권력의 호명에 복종하면서 형성되지만, 권력이 개인의 내부로 내면화되면서 무의식이 되는 순간 주체는 권력의 무의식이라는 스스로에 반하는 저항성까지 가지게 된다."
소설에서 아내가 식물로 변신하는 것은 가부장제에 복종하면서도, 그러한 복종에 대한 내면의 저항과 같은 잔여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피멍'은 가부장적 세계의 질서에 복종하면서도 전적으로 복종되지 않고 남은 잔여물이 물질화된 몸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3. 폭식/채식/거식과 자기 징벌
<내 여자의 열매>에서 드러난 아내의 식물 되기를 통해, 아내가 가부장제에 "거부가 포함된 복종"을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초록빛 식물은 결국 가부장적 세게와의 무의식적 불화가 만들어낸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아내가 결혼을 선택하면서 자신이 바라던 이상적 삶을 표면적으로는 포기했지만 내적으로는 포기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초록빛 식물은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는 이상적 삶에 대한 포기 곧 상실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이 상실에 반응하는 방식을 1)슬픔(Trauer) 혹은 2)애도와 우울증(Melancholie)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1) 슬픔: "의식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대상의 상실", "상실의 대상이 분명한 경우"
2) 우울증: "상실의 대상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
ex. "상실이 일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 "대상이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경우"
→ "무의식의 대상 상실"
<내 여자의 열매>에서 아내는 이상적 삶을 상실한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이상적 삶은 허구이다.
"따라서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이므로 실체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시달림이 될 수 밖에 없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슬픔과 우울증의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우울증은 "자애심의 추락"을 갖고 있다.
프로이트는 우울증의 뚜렷한 임상적 특징으로 "도덕적인 이유에서 비롯되는 자아에 대한 불만 혹은 자기 비난"을 든다.
이것은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에서 구체적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 "'자아 불만'이 이들 작품에서는 자기 징벌의 형식으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대의 차가운 손>을 먼저 살펴보자.
폭식과 식이장애를 앓는 L: "자신의 억압적인 상황을 식욕을 통해 해결함"
→ "사랑하는 남성의 시선에 자신의 몸을 맞추고자 한 데에서 비롯된 것"
→ "그녀의 몸은 철저히 남성 중심적 세계 속에서 수동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L의 증오는 외부가 아닌 자신을 향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상처를 몸에 투영한 채 자기혐오와 비난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녀가 자신에게 보여주는 이러한 태도는 우울증 환자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자애심의 추락', '자기 비난'의 형태에 속한다."
다음으로 <<채식주의자>>를 살펴 보자.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의 연작에서 드러나는 영혜의 채식과 거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행위 또한 자기 징벌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남편이 자신이 실수로 음식에 흘린 식칼 조각을 먹게 될 뻔한 일 → "자기 폭력성"을 확인하게 된 계기
이러한 사건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말에 따른다면 고기를 먹지 않는 것 즉 채식은 꿈속의 얼굴을 지우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었고 그것도 뱃속 얼굴 즉 태생적인 것이라면 어떤 행위로도 자신의 얼굴을 지울 수는 없게 된다."
"거식은 자기 소멸을 위해 그녀가 선택한 극단적인 자기 부정 행위인 것이다."
L과 영혜의 공통점
1) "각각의 주체가 자신의 몸에 가하는 일종의 자기징벌"
L → "남성적 시선의 요구에 복종하는 몸에 대한 주체의 무의식적 저항의 지점"
영혜 → "태어날 때부터 폭력화된 자신의 기원에 대한 직접적인 자기 징벌"
2) "부정하고 싶은 경험이 몸의 차원에서 합치되면서 자기 자신을 애증의 대상으로 변모시킨다"
L → 평생 못 달아나. 죽을 때까지 난, 내 속에서 살아야 하니까...... 내 몸을 빠져나갈 수 없는 거니까.
영혜 → "꿈 속에서 확인한 '뱃 속 얼굴'"
이들의 불안과 상처가 몸의 차원으로 흡수되어 우울증적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3) "이 두 여성은 모두 이상적 자아상의 상실로 아파하는 인물들이다."
L → 성폭행의 경험으로 이상적 자아상 상실
영혜 → 동물적 폭력과 관련된 죄책감, 정부로부터의 성폭행으로부터 이상적 자아상 상실
(이상적 자아상: "선험적으로 주어진 허구적 이상형" → "이런 의미에서 이들의 상실감은 결코 회복될 수 없는 또 하나의 우울증적 양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자기 비난
: "다른 사람 즉 그가 현재 사랑하고 있거나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 혹은 꼭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향해있다. 결국 우울증 환자의 자기 비난은 사랑의 대상에 대한 비난이 환자 자신의 자아에게로 돌려진 경우라고 볼 수 있다."
L과 영혜는 이상적 자아상을 원했으나 결국 좌절되고 만다.
이 이상적 자아상은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 허구적 차원의 이상적 대상"으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4. 불가능한 발화와 가면의 전략
서술자 혹은 화자: "서사를 펼치거나 서사의 필요에 부응하는 행위를 하는 행위자"
그러나 <내 여자의 열매>의 아내, <채식주의자>의 영혜, <그대의 차가운 손>의 L과 E는 모두 피화자이다.
→ "중심 인물이면서 화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들이 스스로의 삶에 대해 말할 위치를 확보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내 여자의 열매> : 불가능한 발화
1) 부부간의 절대적 거리를 갖게 되며 정서적 불가해성을 얻음
2) 병원에서 영혜의 병명을 잡아내지 못하며 사회적 불가해성을 얻음
→ "그가 내린 불가해성이라는 판단은 그녀를 일반 사회로부터 추방하는 판결문에 다름 아니다."
→ "이들이 피화자로서 서술의 자격이 없다는 점은 결국 언어의 세계 속에서 자신에 대한 서술 혹은 명명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피화자들의 존재 방식
1) "내면의 목소리만이 존재하는, 일방적이고도 자폐적인 세계 속에서 외부 세계와 단절한 채 존재하는 방식"
2) "자신의 세계 속에서 나와서 지배 이데올로기적 세계의 언어를 자기화하는 방식"
아내의 목소리가 별도의 독립적인 장으로 존재함
→ "아내의 세계가 갖는 독립적 완결성과 폐쇄성을 의미"
그녀의 세계는 그녀에게 합리성과 정당성을 갖지만, 외부와 소통이 불가하므로 외부에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영혜 자신도, 사회적 시선도 서로 완벽하게 배타적인 관계가 될 때 그녀는 '벌거벗은 생명'으로서의 호모 사케르가 된다."
이때 영혜의 언니에 대한 주목도 가능하다.
영혜의 언니는 정신병원에 갇히는 영혜를 보며 자신이 주체화될 가능성도 맞이하게 된다.
"호모 사케르로서의 영혜가 인혜에게 타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대의 차가운 손>: 가면의 전략
E는 어린 시절 육손이었던 경험이 아픔으로 남아있었고, 이를 지우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게 된다.
"E가 세상으로 진입하는 방식은 여성 주체가 남성 중심의 세계 속에 진입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충족된 존재 즉 남성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여성의 결핍된 조건을 위장하는 데 동원되는 것이 가면(masquerade)이다."
"육손이를 장애로 인식하는 사회 속에서 그녀는 소수적 약자의 삶을 체험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신체적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시선과 육손이로서의 E의 관계가 남성과 여성의 대립구도와 동일한 항으로 배치되어 있다."
E의 이러한 생각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E는 자신에게 '진짜 얼굴'이 있음을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짜 얼굴'은 허상이고, 이를 보여주는 것이 조운형 작가이다.
조운형은 외삼촌이 항상 오른손을 쥐고 있는 것만 보다가, 외삼촌이 죽어서 염을 할 때가 되어서야 그것이 잘린 두 손가락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을 보며 "속았다"라고 말하게 된다.
"외삼촌의 오른손에는 무언가 본질적인 진실이 있을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그로 인한 구속이 외삼촌에게는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조운형이 확인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속았다는 것은 외삼촌의 비밀에 의해 만들어진 이상적 진실이 사실은 허구였음에 대한 깨달음이다."
5. 마무리: 우울증과 여성의 주체화
마무리하며 우리는 영혜의 언니, 인혜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볼 수 있다.
"인혜는 전형적인 가면성 우울증적 주체이다."
자신이 오래 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외적으로 볼 때 그녀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요구하는 삶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인물이다.
이러한 그녀의 삶에 문제를 제기하도록 만든 이는 동생 인혜이다."
"이 자각은 그녀의 삶을 재의미화하는 지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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