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황순원 소설의 특징을 흔히 서정성으로 본다.
그러나 단편 소설의 특징은 당연히 서정성이다.
(루카치에 따르면 서정성이 단편소설의 주된 요소이다.
장편소설에 비해 짧기 때문에 한 장면을 형상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순원 소설에서 서정성이 짙게 보이는 것은 맞지만,
단순한 서정성으로 칭하기에는 황순원 소설의 개성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황순원의 서정성이 어떤지 자세하게 알아보려는 논의가 필요하다.
2. 주술적 초월의 의미
"황순원의 첫 단편집 <<늪>>은 과도기적인 양상을 띤다.
시적인 인식과 방법이 관성처럼 남아 있는가 하면 소설을 향한 충동이 꿈틀거린다."
"<<늪>>의 장면들은 현재형 시제의 감각적인 묘사 문장들에 의해 정지된 현재를 구현한다.
서정적 울림을 빚어내는 그 장면들이 서사로서 기능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는 논리 대신 상징의 관계를 고려하여 장면들을 배열한다.
저마다 외적인 윤곽이 선명한 장면들은 서로 대조되거나 대비된다.
그 장면들 사이가 어떤 논리적 계기를 조성하는 서술에 의해 채워지지 않는다."
"소설로 진행하려는 황순원의 서사적 충동이 그의 서정적 관성에 의해 저지됨으로써 <<늪>>에 수록된 단편들의 독특한 개성을 형성한 것이다."
"황순원은 전래서사를 원용하는 방법으로 서정적 현재로 고정된 장면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
전래 서사를 이용하여 주술에 의해 작동되는 세계가 현실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장면들 사이에 전래 서사를 넣어 주술의 세계가 서사를 이끈다.
"전래서사가 직접 인용되지 않는 경우에도 주술적 효과가 삽화로서 서사에 복무하거나 더 나아가 서사의 구성 원리가 되기도 한다."
<닭제>, <원정>, <산골아이>, <별>, <독 짓는 늙은이>, <어둠 속에 찍힌 판화>, <목넘이마을의 개>, <소나기> 예를 들어 설명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주술의 현실적인 효력을 신뢰하였고 그런 만큼 주술은 현실 세계를 해석하고 질서지우는 방식으로서 유력한 기능을 담당하였다. 근대 이후 주술은 현실적 효력이나 객관적 공감을 획득하지 못한다. 과학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근대의 세계에서 주술은 예감이나 기대, 소망과 같은 주관적 정서의 표출에 머문다. 주술은 서정에 포섭될 만큼 그 영역이 협소해진 것이다. 주술은 세계에 대한 태도는 될 수 있어도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
3. 회화적 서사 지향
"주술은 장면을 선호한다. 논증이나 설명의 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술은 과학과 다르다. 구체적인 감각 경험에 의한 믿음이 주술을 성립시킨다."
황순원은 "서술을 배제한 채 장면들을 배열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늪>: "장면마다 외적 윤곽이 선명"함
<소나기>: '물'로 하나의 장면 통일, 서사마다 장면이 이어진다.
"<소나기>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를 하고 심상들을 엮어 의미를 조성한다."
>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특징을 '회화적 서사'로 칭함
"회화적 서사는 서술을 억제하는 대신 장면을 통해 사건을 전하는 황순원 단편소설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주조된 술어이다."
"회화적 서사는 대개 본문의 말미에서 주제적 울림을 자아낸다."
<학>, <필묵장수>, <목넘이마을의 개>, <곡예사> 예를 들어 설명
"특정 장면이 조성하는 자장에 사건들이 포섭됨에 따라 장면 자체의 인상은 강화되는 반면 서사적 동력이 감소한다."
"그로써 장면이 서사의 요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사가 장면에 복무하는 역전으로 나타난다."
"사건들이 통시적 질서에 지배되기보다 장면으로 수렴한다는 점에서 황순원 단편소설의 회화적 서사는 통시성보다 현재성이 두드러진다. 그 현재성이 회화적 서사를 서정성의 하위 개념이 되도록 한다."
4. 객관 현실과 서정적 태도
서정성 = 세계의 자아화
"서정의 방향은 현실이 아니라 주체의 내면이다."
"그의 단편소설에서 나오는 인상적인 장면도 현실의 재현이라기보다 서술자의 작중 인물의 내면에 드리운 영상에 가깝다."
"따라서 주술과 회화의 방법은 당대 현실의 객관적 재현이라는 요청에 부응하지 못한다. 그 대신 서술자나 작중인물에게 내면화된 현실이 재현된다."
<황소들>의 바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무지하여 자기 뜻대로 상황을 해석한다.
"바우에게 현실은 여전히 미지의 어둠으로 남는다."
"바우의 주관적 인식과 객관 현실 사이의 간극은 극복되지 않"고, 현실에 대한 명확한 진상은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그 현실은 고통스럽지만 어째서 현실이 그러한지에 대한 성찰이 진행되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을 개조하거나 변혁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그러한 현실을 사는 주체의 태도가 주목된다."
1) 인정주의
: "어째서 현실이 고통스러운지 알 길 없지만 기왕에 현실이 그러하다면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그 현실을 견뎌야 한다."
"타인을 향한 공감과 포용이 세상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2) 인고
: 주체에 대한 인고 > 현실을 인고하는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
타인을 향해서는 인정주의를 말하고 주체를 향해서는 인고를 말했다.
"현실의 부정적 하중이 증가될수록 인정주의와 인고에 소모되는 정신력도 증가한다.
그 정신력의 소모가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허무주의가 나타나고 그 허무주의는 현실도피를 부른다."
"황순원의 단편소설에서 현실도피는 주로 음주를 통해 표현된다."
"당대 현실에 대해 황순원의 단편이 보여주는 태도는, 인정주의와 견인의 자세로부터 출발하여 허무주의에 이른다."
5. 결론
"황순원 단편소설의 서정성이 지닌 고유한 개성으로 주술적 초월과 회화적 서사를 고찰하였다."
"그의 단편소설에서는 개관적 현실보다 현실에 대한 주관적 태도들이 재현된다.
그 태도는 인정주의와 인고에서 허무주의까지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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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로 황순원 <학>을 읽었었는데,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소설이라기엔 너무 시 같아서, 뭔가 서사가 진행되기보다는
갑자기 동네 친구 둘이 오랜만에 재회해서 막 얘기하다가..
갑자기 학을 보고 하하호호 하는 장면으로 끝나서;
진짜 이게 뭐임? 이라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고귀한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꼭 한옥집에 살고 계시는 큰집의 실세 어르신.. 막 큰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좀 들었는데
황순원의 인정주의와 인고에서 내가 그것을 느꼈던 것 같다.
황순원은 수능에서도 자주 나오는 작가이고 (곡예사를 수험생 때 읽어본 기억이 있다.)
서정으로도 유명했는데 그것을 요목조목 잘 따져 황순원의 서정성을 정립한 논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황순원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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