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문학과 그로테스크
문학은 본래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을 낯설게 한 것인데,
그로테스크 문학은 그보다 더 낯설게 표현하고 있는 문학을 말한다.
"그로테스크란 본래, 15세기말에 폐허가 된 로마 유적을 발굴하던 당시 발견된 건물의 동굴(grotte) 모양의 벽면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당시 그 벽면은 공상 속의 동물, 괴이한 모습의 인간상, 그리고 꽃과 촛대의 모양 등이 아주 복잡하게 결합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실과는 명백한 거리감이 느껴지고, 어쩌면 '광기'나 '조롱'마저도 느껴지는 시선으로 세상을 표현한 문학,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웃음이나 충격, 심지어 혐오감까지 느끼도록 만드는 문학, 그것을 서구에서는 '그로테스크(grotesque)'라는 용어로 표현해 왔다."
"문학에서의 그로테스크는 문학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낯섦'을 가장 극단적으로 발현시킨 형태를 지칭하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2. 그로테스크의 개념사
모든 문학을 그로테스크하도고 표현할 수는 없다.
그로테스크 문학은 '고딕(gothic) 소설'이 유행했던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반에서 새로 찾아볼 수 있다.
<어셔 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에밀리를 위한 장미(a rose for emily)>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서는 "희극적인 것과의 결합 속에서 거론되곤 하였다."
<대머리 여가수>
한국 문학에 적용해보자면,
<봉산 탈춤>
<이생규장전>
<장화홍련전>
이 있다.
근대 이후 개화기 무렵 신소설 중에서는,
<귀의 성>
이 있다.
3. 잔혹한 현실로서의 그로테스크
한국 문학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의 현대사는 그로테스크적 상황이 익숙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암울한 우리의 현대사는 그 자체로 '잔혹한 현실'이었고, 그 현실은 곧 '그로테스크'적 상황이었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시대의 소설들 중 구체적으로 1930년대와 1950년대 소설을 살펴보자.
강경애 <지하촌>의 소설, 장용학과 손창섭의 소설들 가운데 '구더기'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장용학과 손창섭의 소설에서 구더기는 "아물지 못한 전쟁의 상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강경애의 <지하촌>에서는 아이의 상처에 쥐가죽을 덧대놓으면 나을 수 있다는 말에 그대로 실천했다가 아이의 몸에 구더기가 끓게 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당시의 문학에서 그로테스크함은
"과장된 수사처럼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현실의 한 부분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본 것일 뿐이었다."
4. 육체와 그로테스크
군사 독재 정권 시대를 거치던 1960-1980년대 소설을 살펴보자.
"사회는 여전히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 현실을 바로 잡으려던 4·19, 5 ·18 항쟁은 잔혹하고 비참하게도 피로 물든 결말을 맞아야만 했다.
정치적 억압과 검열, 장르문학의 비활성화로 그로테스크함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위축되던 인간 삶을 조명한 소설에서 '육체'를 부각시키는 소설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육체성'의 부각은 그로테스크의 중요한 양상 가운데 하나다.
바흐친이 언급한 작품들에서는 생식기관들이 부각되는데에 반해,
한국 소설에서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듯 난장이라는 신체적 특징이 부각된다.
피지배계급에게 '육체'란 "유일한 '생산수단'이며 자산"이다.
"조세희의 소설 속 '난장이'가 장애나 기형을 가진 존재라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 장치이며, 산업 발전의 근원인 노동자, 그리고 노동의 근원인 노동자의 육체를 주목하게끔 만든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난장이'는 착취적 경제 구조 속에서 소모되고 훼손되어 가는 노동자를 상징하는 것이며, 노동과 노동자의 가치를 부정당한 계급적 분노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 기형성에 의해 부각되는 노동의 근원으로서의 육체
또한, 라블레의 경우처럼 금기시되던 성이나 배설과 관련된 육체적 어휘를 노출하는 방식의 소설들도 찾아볼 수 있다.
<오적>: 사회 현실에 대한 혐오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풍자와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최승자의 시: 사회 현실에 대한 혐오감이나 분노를 표출하는 '도구'로 파악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
한때 몸을 불살라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시기에 '육체'는 "거대한 투쟁의 희생양이면서 강력한 무기"가 된다.
→ 금기를 거스르며 강조되면서 현실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육체
한편으로 '육체'는 "보잘 것 없이 소외된 물질에 불과하였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인간'은 근대적 이성을 소유한 존엄한 존재이면서도 '사물화'되거나 '기계화'된 물질로 파악되곤 하였다."
최영미의 시: "물질화된 인간 존재를 표상하거나 상징화한 표현들"을 찾아볼 수 있다.
→ 거대한 사회 흐름 속에서 도구화되거나 물질화되어버린 육체
"이러한 육체가 문학 작품 속에서 '그로테스크'하게 부각될 때, 문학은 사회적 현실을 강력하게 풍자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기도 한다."
5. 반윤리와 반이성의 그로테스크
2000년대 이후의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여유로워졌을지는 몰라도 현실의 잔혹성은 더욱 심화되었다.
IMF 경제 위기로 인해 "국가나 사회, 공동체 그 무엇도 잔혹한 경제 논리 앞에 놓인 개개인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윤리와 도덕은 돈의 경제의 논리 앞에서 하염없이 작아졌으며,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끔찍한 패배만이 있다는 논리가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불변의 진리처럼 개인들을 억압해왔다."
"인간 윤리의 가능성 자체가 배제된 듯한, 극단적인 '반윤리'의 의식과 '비이성'적 행동이 드러나고 있다."
<목화밭 엽기전>: "끔찍하고 섬뜩한 표현과 묘사를 통해 현대사회의 잔혹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느 한 가지 사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하루>: "비이성적인 상황을 설정해놓음으로써, 그로테스크한 현실을 제시해놓았다."
<벌레>: 앞의 소설들보다 조금 더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
→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존재를 관계 내에서 증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 "2000년대를 전후로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급격히 보급되었지만, 오히려 소통 불능 상태에 빠져든 우리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 것이다."
작품들은 기괴하고 우연한 사건과 설정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현실을 폭로하였다.
실제로 우리의 현실이 비이성적이며 반윤리적일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6. 핏빛의 그로테스크, 혹은 엽기
2000년대의 다양한 작품들은 감각을 이용해 그로테스크한 표현들을 많이 사용하였다.
(ex. 영화: <이레이저 헤드>, <트윈 픽스>, <시계태엽 오렌지>, <샤이닝>
ex. 한국 영화: <섬>, <올드보이>)
이처럼 2000년대 전후에 많이 쓰이던 그로테스크한 표현을 '엽기'라고 그 당시에 지칭하곤 했다.
"특정한 시기 우리 문화 전반을 아울러 이해할 수 있는 '코드(code)'로 파악되기까지 했었다."
엽기: "본래 사전적 의미로는 비정상적이고 괴이한 일이나 사물에 흥미를 느끼고 찾아다니는 것을 이르는 말",
"'그로테스크'의 일본식 번역어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가 그것을 ;엽기'라고 부르건, '그로테스크'라고 부르건, 분명한 것은 그렇게 표면화된 묘사와 표현들이 반영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현실이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이며 잔혹하고 끔찍하다는 사실이다."
"붉은 핏빛의 이미지는 이제 전쟁이나 생존 투쟁의 현장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현실 가까운 곳에서 발견된다."
→ 카니발리즘을 연상시키는 이미지 활용(카니발리즘(canibalism): 육식 또는 잡식동물이 동종의 개체를 잡아먹는 행위)
<숨>,<피>: "끔찍하고 섬뜩한 핏빛 이미지가 일상에 스며든 사례"
"유혈낭자한 이미지로 가득했던 백민석 소설의 경향은 최근 백가흠이나 편혜영의 소설들로 이어지고 있다."
백민석의 <이렇게 정원 딸린 저택>
백가흠의 <광어>, <배꽃이 지고>, <웰컴 베이비!>, <귀뚜라미가 온다>
편혜영의 <아오이가든>, <문득>, <시체들>
"백가흠의 소설에 등장하는 엽기적인 사건들은 흔히 TV 뉴스에서 접할 수 있었던 사건들이며, 편혜영의 음울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전염병 질병이나 사회적 혼란 앞에서 더욱 이기적이 되어가는 우리 현실에 비추어볼 때 새삼스럽지 않다."
"사실 이들 소설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잔혹한 묘사나 직설적인 서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그동안 외면해왔던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소설을 통해 직시해야하기 때문이다."
6. 결론: 폭력의 사회와 불편한 진실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이 문학에서 주목받고 활용되었던 시기가 근대적 사고가 사회적으로 완전히 자리 잡히는 한편, 제국주의적 침략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9세기 무렵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로테스크의 성격은 (중략) '이성 지배적 근대 사회'에 대한 반발 작용으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일탈과 탈주 욕망)
"서구와 달리, 우리 사회에서는 '폭력과 억압'의 정치적 역사'가 이어져 왔었"고,
"'그로테스크'는 '폭력과 억압'을 폭로하는 역할로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 활용되어 왔던 측면이 더 중요시되었다."
그로테스크라는 개념이 한국 문학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문이다.
사실 저번에 편혜영 작가 연구 하다가
2000년대를 빛낸 작가에 김경주, 백가흠, 편혜영이 있는 것을 보고
2000년대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궁금해져서 그로테스크에 대해 공부하다가 보게 된 논문이다.
너무 길어서 핵심만 보고 싶다면 볼드체만 훑어봐도 되지 않을까 한다.
문학이 우리 사회에 어떤 효용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크다.
문학만이 할 수 있는 분야가 있고 그러기에 문학도 반드시 사회에 자주 활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우리가 요새 누가 소설을 많이 읽는가. 미디어가 발달한 이 사회에서..
나도 소설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본다 ㅋㅋ ㅠㅠ
문학과 비슷한 것이 영화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어쨌든 문학보다 영화가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다 같이 가치를 얘기하는 데에 좋지 않은가 라는 생각도 갖고 있다.
변하는 사회 속에서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가치를 어떻게 전달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이 된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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