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나도향은 동인지 <백조>를 창간한 맴버로,
요절한 작가이지만 소설의 기조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서 보아도 될 만큼 다양한 개념들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 <환희>는 장편연애소설로 당시 대중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이 소설에서 드러난 연애 문제에 대해 감정 구조를 포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감정 구조: "한 시대나 특정 세대의 경험과 행위에 깊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배적 감정")
특히 <환희>에서는 등장 인물들이 보여주는 '혐오'의 감정에 주목한다.
"혐오의 감정 구조는 당대 인간들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 드러나는 혐오의 감정의 부정 및 긍정 모두를 주목하면 감정 구조를 더욱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 동물성 혐오와 순수 근대의 경계 짓기
소설에서 혐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인물은 우영이다.
우영은 "혜숙-선용-우영"과 "설화-영철-우영"의 삼각관계에 모두 개입하며 연애 상황에 큰 영향을 주는 인물이다.
여성들이 모두 우영의 외모와 재력에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우영의 존재에 남녀 불문하고 모든 등장인물이 혐오감을 느낀다.
이것은 근대적 가치인 '성'과 '돈'에 직결되며, 이러한 근대적 가치에 양가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매력과 동시에 혐오의 감정도 든다고 볼 수 있다.
위의 가치들은 "다른 인물들의 진정성을 훼손시키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자발적인 성과 비생산적인 돈으로부터 자존심과 순수함을 지켜내는 것이 인간의 인간다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혐오의 감정은 "기원상 동물적인 것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욕망과 관련이 있다."
"혐오는 동물적인 것과의 경계 짓기를 통해 인간다움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취약성과 나약함, 두려움을 반영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계를 넘어서는 것을 비정상적인 위반으로 생각하면서 혐오를 스스로 정당화한다."
"동물을 피함으로써 동물이 되고 싶지 않다는 분리 욕망과, 자신은 동물이 아니라는 나르시시즘으로부터 혐오는 시작된다."
3. 여성 혐오와 근대의 오염에 대한 공포
혐오의 감정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대상이 '여성의 몸'인데,
여성의 몸이 "유약하고, 끈적거리며, 유동적이고, 냄새나기에" 동물과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남성들은 여성에 대해 환멸을 느끼며 여성들은 자기 스스로를 자기 비하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남성들은 여성에 대해 혐오를 느끼는 것이 사실은 "순수함에 대한 집착과 비순수한 여성에 대한 공포"에서 온다는 사실은 남성이 오히려 피해자라는 인식까지 보여준다.
여성이 여성에 대해 혐오를 느끼는 것은 죄책감을 동반하는 일이기에 자기 파멸까지 이르를 수 있다.
"처녀성의 신화가 여성들에게조차 얼마나 뿌리 깊게 내재화되어 있는 혐오의 기제인지 반증하고 있다."
"동물성과 반대되는 처녀성의 상실에 대한 공포가 그에 대한 집착과 혐오로 동시에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녀성의 상실은 자유연애를 활성화함과 동시에 그로 인한 탈낭만화에 대한 공포 또한 동시에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근대 초기 연애 체험의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4. 도덕적 혐오와 성찰적 근대성
나도향 소설에서 우리는 혐오의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혐오의 최종 단계에서 이를 승화시키기 위해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것이 '눈물'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분비물 중에서 (중략) 유일하게 눈물만이 혐오감을 유발하지 않는다.
눈물을 통해서만 동물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눈물을 흘리는 때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자신을 나약한 존재로 파악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할 때 흘리게 되는 감상적 눈물"
2) "어쩔 수 없는 인간적 한계나 운명에 부딪혀서도 자기 초월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할 때 흘리게 되는 숭고한 눈물"
두 번째 눈물로 해석이 가능할 때 우리는 나도향 소설에서의 혐오의 긍정적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
"근대에서는 비극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이처럼 비극이 불가능한 시대에 등장한 것이 멜로드라마이다."
"하지만 근대라는 탈신성화된 시기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멜로드라마는 보통의 인간들이 '도덕적 비의'를 추구할 때 필요한 감정 구조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 "인간의 연약함과 고귀함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눈물은 "혐오의 대상에서 공감의 대상으로" 상대방을 뒤바꾼다.
"혐오를 극복한 혐오는 '도덕적' 혐오라고 볼 수 있다.
감상적이고 병적인 눈물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건설적인 눈물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을 극복한 눈물은 타인의 도덕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눈물을 통해 근대적 성찰을 이끌어 낼 수 있게 되며,
"어느 곳 하나에도 기댈 곳 없이 무력하게 놓인 사람들의 근대적 삶의 불안전성, 그 자체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혐오의 감정을 극복한 이후에 흘리는 눈물은 약자의 도덕적 무기일 수 있게 된다."
도덕적 혐오는 "혐오 이후의 혐오"이다.
5. 결론: 1920년대 초기소설과 혐오의 근대성
인간은 언제 혐오의 감정이 발동되는가?
"인간이 생래적 조건인 취약성을 인정하지 않을 때 그렇다."
"이런 혐오가 특정 상황에서 특정 대상의 예속화나 낙인찍기 등과 연결될 때 역사적이고 권력적인 감정 구조로 자리 잡게 된다."
1920년대의 초기 소설의 감정 구조는 이광수의 문학이 1910년대 말에 보여주었던 "계몽의 실패와 그에 대한 반응"으로 단순화될 수 없다.
지속되었던 여론처럼 '동정'이 근대 초기의 감정 구조로 파악되기도 하지만,
나도향의 소설을 보았을 때 "동정의 역상 혹은 현실태로서 혐오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거나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이러한 혐오 감정을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근대의 산물이었던 '자유 연애'였다.
근대 초기에 들어왔던 만큼 1920년대의 연애란 시행 착오가 많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혐오감이 생겨났다.
나도향의 소설은 이런 혐오감을 눈물로 극복함으로써 "근대를 넘어서는 근대"를 바라보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우울증, 내적 고통의 신체화 (0) | 2024.08.16 |
---|---|
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1) | 2024.07.26 |
위트와 파라독스와 아이러니, 이상 (0) | 2024.07.19 |
이상할수록 더 들여다봐야 하는 (0) | 2024.07.15 |
서정성, 황순원 (0) | 2024.07.12 |